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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산 예술 정보 채널 - 페르시아 전쟁 (+플라타이아 전투)

by kaessan 2020.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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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예술 정보 공유 채널입니다. 오늘은 제2차 페르시아 전쟁 - 플라타이아 전투 1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제 2차 페르시아 전쟁 - 플라타이아 전투 1

제2차 페르시아 전쟁 - 플라타이아 전투 1

크세르크세스는 회군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때 육군을 총지휘하던 마르도 니우스가 본인은 그리스에 남겠다고 자청했습니다. 마르도 니우스는 예전 다리우스 1세가 그리스 반도로 침공해오려고 할 때 폭풍우를 만나 시작도 못했던 부대의 총지휘관이었으며, 크세르크세스 즉위 후 계속 그리스 반도를 침공해야 한다고 크세르크세스를 부추기던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을 부추겼는데 전쟁에선 지고 이대로 철수하면 페르시아에서 본인이 화를 입거나 입지가 축소될 수 있겠죠. 마르도 니우스는 모든 걸 만회하고자 본인은 끝까지 남기로 했습니다. 전하, 페르시아인들이 그리스인들의 웃음거리가 되게 하지 마시옵소서. 전하께서 입으신 피해는 결코 페릐아인들 탓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이곳에 머물지 않기로 결심하셨다면 전하께서는 군대의 대부분을 이끌고 고국으로 떠나옵소서. 하지만 전하께서 저에게 군대에서 30만 명을 뽑게 해 주신다면 제가 모름지기 그리스를 예속시켜 전하께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헤로도토스 역사

크세르크세스가 여성 사령관 아르테미시아에게 의견을 물어보자 아르테미시아도 그러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아르테미시아와 전부 페르시아로 귀국했고 마르도 니우스만 30만 명 병력을 데리고 끝까지 그리스에 머물기로 합니다. 마르도 니우스의 병력도 아테네에선 나와 그리스 북부의 테 살리에로 옮깁니다. 마르도 니우스는 아테네로 사절단을 파견해 항복을 권유했습니다.  스파르타는 아테네가 항복하진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어 스파르타도 아테네로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아테네 측은 당연히 거절이었습니다. 그들의 세력이 우리보다 몇 배나 더 강하다는 것을 우리 자신도 잘 알고 있으니 그대는 우리를 그렇게 힐난할 필요가 없소. 하지만 우리는 자유를 몹시 갈망하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스스로를 지킬 것이오. 그대는 우리에게 페르시아와 협약을 맺도록 설득하려 하지 마시오. 우리는 그대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스파르타 측에겐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이 우리가 페르시아와 협약을 맺지 않을까 두려워한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거요.  그렇지만 그대들이 아테네 인들의 기질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생각한 건 수치스러운 일인 듯 하오. 아테네인이 한 명이라고 살아남아 있는 한 우리는 절대 크세르크세스와 협약을 맺지 않을 것임을 말이오. 그러니 그대들은 되도록 빨리 군대를 보내 주시오.  그들이 아티케에 들어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보이오티아로 진군해야 하오. 마르도 니우스는 전병력을 이끌고 빠르게 아테네로 진군했습니다. 테베를 비롯해 그리스 중북부의 일부 폴리스들이 페르시아에 항복을 하는 바람에 마르도 니우스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남하했습니다. 제대로 된 방어를 맞추지 못한 아테네는 일단 부랴부랴 그때처럼 살라미스로 시민들을 전부 대피시켰습니다. 그리고 마르도 니우스는 텅 빈 아테네를 점령했습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도움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소식이 없자 아테네는 사절단을 스파르타로 보내 속히 아테네를 구원해줄 것과 그렇지 않으면 아테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스파르타에 보냈습니다. 여기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페르시아에 항복하는 것이었죠. 스파르타에 도착한 아테네 사절단이 본 풍경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제전이랍시고 축제를 열고 있는 겁니다. 아테네는 지금 국운이 사상누각인데 스파르타는 놀고만 있는 겁니다. ​아테네 사절단이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며 호소하자 스파르타는 공식입장을 미루기만 하고 무려 10일 동안이나 별다른 말을 해주지 않은 채 아테나 사절단을 기다리게만 했습니다. 그런데 아테네 사절단도 모르는 사이 스파르타는 레오디나스 국왕의 조카 파우사니아스가 이끄는 1만여 명이 출병을 했다는 겁니다. 모든 게 다 페르시아를 방심하게 하기 위한 스파르타의 작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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