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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산 예술 정보 채널 - 페르시아 전쟁 (+플라타이아 전투2)

by kaessan 2020.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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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예술 정보 공유 채널입니다. 오늘은 제2차 페르시아 전쟁 - 플라타이아 전투 2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제2차 페르시아 전쟁 - 플라타이아 전투2

 

제2차 페르시아 전쟁 - 플라타이아 전투2

페르시아를 속이기 위해 스파르타는 아테네도 속였던 것입니다. 스파르타 1만 군대가 아테네로 온다는 소식에 마르도 니우스는 아테네에서 군대를 물렸습니다. 스파르타에 겁을 먹었다기보단 아테네 땅은 페르시아 기병대들이 활약할 수 있는 좋은 지형이 아니기 때문에 페르시아에게 더 유리한 곳에서 싸우고자 테베 지역으로 거점을 옮겼습니다. 테베는 페르시아에 항복한 그리스의 폴리스였습니다. 아테네도 병력 8천 명을 스파르타에 합류시켰고 페르시아 군대가 있는 테베 쪽으로 나아갔습니다. 테베로 가던 중 에라 트리아 부근 페르시아 기병대 일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리스 연합군 대가 산기슭에 진을 쳤습니다. 페르시아 기병대가 선제공격을 해오자 그리스 군이 기병대를 물리치면서 그리스 연합군의 사기가 올라갔습니다. 그리스 연합군은 쭉쭉 진군하였고 페르시아와 싸우기로 한 폴리스 국가들도 군대를 보내와 병력이 7~10만 정도였습니다. 그리스 연합군은 언덕과 평원이 골고루 섞여있지만 가르가 피에 샘이라는 쉽게 물을 확보할 수 있는 플라타이아에 진을 쳤습니다. 소식을 들은 페르시아의 마르도 니우스도 테베군과 연합해 플라타이아로 진군합니다.  마르도 니우스는 처음에 존버로 대응합니다. 그리스 폴리스 연합은 단결력이 그렇게 우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만히 내버려두면 지들끼리 분열이 날 거라고 생각했고 그리스 연합군 대가 자멸하도록 마르도 니우스는 일단 기다리기로 합니다. 그렇게  11일이 흘렀습니다.

그리스 연합!

오히려 그리스 연합은 시간을 벌어주니 더 많은 폴리스 병력이 증원 와서 군대가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마르도 니우스의 참모진과 장수들은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주장했으나 헤로도토스의 말을 빌리자면 강성하고 완고하고 비타협적인 마르도니우스는 모여든 그리스인들이 더 늘어나는 것을 두고 보지만 말고 되도록 빨리 싸움을 벌이자고 했습니다. 누구도 마르도니우스 고집을 못 꺾었습니다. ​마르도 니우스가 그렇다고 무모하기만 한 장교는 아닌 것이 마르도 니우스는 정예기병대를 뽑아 그리스 군이 식수를 얻는, 특히 스파르타가 군대들이 직접적으로 식수를 확보하고 있던 가르가피에 샘을 습격해서 장악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보급로까지 차단해버렸습니다. 그리스의 폴리스 대표들이 모였고 식수와 보급로가 차단됐으니 후퇴하자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폴리스들은 철수를 시작했고 스파르타는 내부적으로 철수하자는 측과 철수할 수 없다는 측으로 나뉘어 언쟁이 오갔기 때문에 가장 늦게 철수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스 진영이 텅 빈 것을 본 마르도니우스는 전 기병대를 보내 도망치는 그리스 연합 군대를 공격하게 했습니다. 마르도 니우스의 공격명령에 당황한 스파르타의 파우사니에스는 기수 한 명을 급하게 아테네로 보내 구원 요청을 했습니다. ​철병을 반대했던 아테네는 재빨리 스파르타를 구원하러 갔는데 페르시아에 붙은 테베군이 아테네의 진 군로를 막아 두 폴리스가 격돌하면서 아테네는 스파르타를 구원하러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스파르타 진영에선 파우사니에스가 두 차례의 점을 치고 두 번째에 길조가 나오자 전군 공격명령을 내렸습니다. 전략전술은 없었고 그냥 살고 싶으면 어떻게든 싸워 이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수적으로 페르시아 군대가 훨씬 많았지만 스파르타 병사들은 페르시아 군대와 전면에서 맞닥뜨리며 백병전을 전개했습니다. 아무리 수적으로 페르시아가 우세해도 백병전으로 그리스 연합을 이기기 힘들었습니다. 우선 기병들이 마음껏 활약을 하지 못하고 근접전에서는 중무장한 그리스의 중장보병(호플리 테스)이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스파르타와 페르시아의 치열한 백병전은 처음엔 비등비등하게 전개되고 있었는데 마르도 니우스가 싸우는 도중 날아오는 돌에 맞아 현장에서 즉사해버렸습니다. 지휘관의 상실에 페르시아군의 전열이 완전히 흐트러져 버렸고 이때를 기해 스파르타는 더 공세를 퍼부어 페르시아인들은 전부 달아났습니다. ​파우사니에스는 우리가 아는 모든 승리 중에서 가장 찬란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스파르타 병력은 곧장 아테네와 테베 전선으로 뛰어들어 아테네를 도와 테베군을 무찌르기도 했습니다. 이 전투가 제2차 페르시아 전쟁을 사실상 종결시켜버렸던 전투, 라타이아 전투(BC479)입니다. 1년 전 스파르타가 패전했던 레오디나스의 테르모필레 전투에 대한 제대로 된 복수였습니다. 플라타이아 전투의 승전 소식이 철병하고 있던 다른 폴리스 병사들에게 전해지자 그들은 다시 군대 머리를 돌려 그들도 전선에 합류하고 도망치는 페르시아인들을 추격하며 그들을 해치웠습니다. ​후퇴한 페르시아인들은 그들이 구축해놓은 성벽을 방어막으로 농성전을 고집하고 있었으나 다른 폴리스 국가들까지 합류하자 상황은 위태로웠고 아테네 군사들이 성벽을 넘으면서 페르시아 군 상당수가 섬멸되어버렸습니다. 헤로도토스 기록에 의하면 크세르크세스가 남겨놓은 30만 명 중 3000명만 살아남았습니다. 이로써 BC480년에서 시작해서 BC479년에 끝난 제2차 페르시아 전쟁도 테르모필레 전투-살라미스 해전- 플라타이아 전투를 거치며 결국은 그리스 연합 군대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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