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예술 정보 공유 채널입니다. 오늘은 중세 문화예술의 발전 - 중세의 예술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중세 문화예술의 발전 - 중세의 예술관
중세의 신앙과 회화
어두웠던 중세의 시기에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유일한 기준은 신앙이었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중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그래서 학문이라는 것도 곧 신앙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최초의 대학 형태의 학교가 생겨났는데 오로지 하나의 학문, 신학만을 가르치는 기관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신앙 전파의 도구로 예술을 사용했습니다. 예술 자체의 아름다움을 배제되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회화의 목적은 성경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자체가 모두 라틴어로 쓰여 있었고,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필사본을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림을 통해 성경의 장면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세 미술의 유일한 목적이었기 때문에 누가 보아도 내용 파악이 가능하도록 단순화되고 획일화되었습니다. 슈테판 로흐너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에게 마리아가 경배하고 있는 내용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상징적인 것이 중세 미술의 특징입니다. 머리 뒤에 비치는 후광과 천사들의 모습은 현실이 아닌 정신적이고 관념적인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상징적이고 비현실 적습니다. 실제적으로 넓은 국토를 다스릴 수 없었던 국왕이 신하들에게 봉토를 떼어주고 그 봉토 내에서 실질적인 군주 역할을 하도록 허락했던 봉건제도의 등장으로 중세는 정치적, 예술적 침체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국왕의 강력한 왕권이 없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고, 봉토 내의 대부분의 물자가 자급자족 형태였기 때문에 시장 경제 또한 활성화되지 못했습니다. 자연히 예술가들을 후원해 줄 수 있는 궁정이 없는 상황에서 5-7세기경 서유럽의 예술 수준은 최악으로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유일하게 예술이 뿌리 잡을 수 있었던 곳이 성당과 수도원이었습니다. 교육 또한 수도원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 학교화 되면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유일한 건축 활동 역시 교회 건축이었습니다. 수도원에 모인 젊은이들은 주로 귀족의 자제들이었기 때문에 육체노동에는 서투를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선택한 노동은 성경을 필사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당시의 중세시대에는 그림이라는 것이 하나의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 떨어져 나오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회화나 조각은 건축의 한 부분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중세시대 초기에 주교좌성당과 수도원을 통해서 초보적인 형태의 예술이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신성로마제국을 만든 샤를마뉴 대제의 아헨 궁정에서 예술활동과 문예를 장려하는 움직임이 시작되는데 이 시기를 카롤링어 르네상스라고 부릅니다. 카롤링어 르네상스를 통해 중세풍의 그림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서기 800년 정도에 그려진 그림이지만 아주 기초적인 문화의 싹이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샤를마뉴 대제가 프랑크 왕국을 점령하면서 군사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일종의 영웅시가 탄생하면서 훗날 기사문학의 모태가 됩니다. 비잔틴 제국에서 전해 온 유리공예 기술 등이 수도원을 기준으로 조금씩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시기의 비잔틴에 비하면 상당히 초보적인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큰 건물을 지을 때는 비잔틴의 장인들을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캐산 비즈니스 채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캐산 예술 정보 채널 - 페르시아 전쟁 (+플라타이아 전투) (0) | 2020.07.19 |
|---|---|
| 캐산 예술 정보 채널 - 이집트 미술! (0) | 2020.07.18 |
| 캐산 예술 정보 채널 - 비잔틴 제국과 문화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들 (0) | 2020.07.17 |
| 캐산 비즈니스 채널 - 중세의 사회적 변화와 고딕 양식 간의 관계 (0) | 2020.07.17 |
| 캐산 예술 정보 채널 - 로마네스크 양식과 십자군 운동! (0) | 2020.07.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