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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산 예술 정보 채널 - 로마네스크 양식과 십자군 운동!

by kaessan 2020.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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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예술 정보 공유 채널입니다. 오늘은 중세 예술문학의 발전 - 로마네스크 양식과 십자군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중세 예술문학의 발전 - 로마네스크 양식과 십자군 운동

 

중세 예술문학의 발전 - 로마네스크 양식과 십자군 운동

로마네스크 시대의 예술


중세는 중반기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중세 중반기에 나타난 건축양식을 로마네스크 양식이라고 부르는데 이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들이 지어질 무렵 중세는 십자군 운동이라는 사상 초유의 종교적, 정치적인 변화를 맞게 됩니다. 십자군 운동을 통해서 중세는 중반기에서 후반기로 이어지게 됩니다. 로마네스크 시대의 예술에서는 개성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는 건축이나 회화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세 중반기까지의 유럽에는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경제구조 역시 개인적 부의 축적 개념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로마네스크 양식은 1000년 경부터 큰 변화 없이 200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남다른 개성이나 변화를 유도하기에는 중세 사회는 너무나 폐쇄되어 있었고 보수적이었습니다. 로마네스크 시대의 건물들은 대개 주교좌성당이나 수도원입니다. 독일의 각 제후들이 주교를 지원하는 형식으로 건축되었습니다. 수도원이지만 왕의 궁전처럼 장대하고 견고한 모양새로 건축하였습니다. 이 당시에는 추위를 막기 위해서 자연히 창을 작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동서 교역이 두절된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들은 둔중하고 닫힌 구조였습니다. 1095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이교도들에 인해서 침탈된 예루살렘을 탈환하자는 성지 수복 운동인 십자군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루살렘이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던지 300-400년이 지난 시점에 십자군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유럽 각국의 군주들이 불타는 신앙심으로 이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행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독일 지역에서 예루살렘까지 간다는 것은 대단한 도전이었습니다. 1098년에 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이슬람과 최초의 전투를 펼치게 됩니다. 위 그림을 통해 보이듯이 이슬람들의 피부를 회색으로 표현함으로써 당시 이슬람들을 외계인처럼 취급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군 운동은 모두 8번의 출병을 하게 되었는데 이 중 첫번째 십자군만이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됩니다. 첫 번째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점거하고 있는 이슬람들을 모두 죽이고 기독교 왕국을 건설하게 되었고 이 왕국은 60년 정도 존속하다가 이슬람들의 공격에 무너지게 됩니다. 이로 인해 유럽은 역동적인 변화를 맞이했고 동방의 물품들이 서유럽으로 전해지면서 교역과 예술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때 동서 유럽의 중심지에 있는 도시국가 베네치아가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11세기와 12세기에 들어 최초로 경제가 부흥하면서 도시가 출현하게 됩니다. 로렌체티의 벽화를 보면 성벽으로 둘러싸인 초보적인 도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붕 위의 석공들이 새로운 건물들을 짓고 있고 상인들이 활발하게 교역을 하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변화가 서서히 예술 속에서의 개인의 존재를 부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왕처럼 묘사되던 예수가 한층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화되기 시작하고 개인의 감정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회화의 방향이 변모하기 시작합니다. 최후의 심판 등 공포를 표현한 회화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고통과 마리아의 슬픔 등 인간의 감정을 부각한 회화가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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