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캐산 비즈니스 채널입니다. 오늘은 중세 문화예술의 발전 - 중세의 형성과 발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중세 문화예술의 발전 - 중세의 형성과 발전
중세 시대의 회화들
독일 마리아 라흐 수도원
중세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예술작품은 회화와 건축입니다. 중세 시대의 두꺼운 벽과 작은 창의 건축과 회화를 보면 답답하고 갇혀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부오닌세냐 - 마에스타(1285)
별처럼 빛나는 성모라는 뜻의 마에스타 그림은 답답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한 이유는 안료의 한계로 인한 색채의 단순함이었습니다. 노란 배경은 실제 그림에 붙인 금이었기 때문에 과도하게 장식적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원근법이 개발되지 않았던 시절이기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평면적인 느낌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중세시대에 그려진 그림은 거의 성경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색다른 주제의 그림을 볼 수 없었고 또한 화가의 개성이 느껴지지 않아서 누가 그린 그림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중세 유럽의 정치 세력 판도
서유럽은 교황과 봉건 군주들이 지배하고 있었고,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비잔틴제국과 이슬람이 지배한 이베리아 반도의 세 구역으로 정치 세력이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당시 서유럽은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가장 열등했습니다. 강력한 왕권이나 물자 교역이 활발한 무역 도시도 없었습니다. 문화의 발전은 높은 경제 수준을 이루었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기 때문에 중세시대의 서유럽에서는 문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중세시대 서유럽에는 오늘날의 프랑스, 독일, 영국과 같은 국가는 아직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시대였습니다. 대부분 서로마 제국의 영토였으나 멸망하면서 로마가 가지고 있던 정치 체제나 경제 기반이 없어지게 됩니다. 로마 시대의 도시문화가 파괴되면서 뚜렷한 중앙 집권 권력 없이 여러 영주들이 자기의 영토를 다스리면서 작은 국가 형태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크고 작은 전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또, 낮은 의학 수준과 위생 관념으로 인해서 생존율이 매우 낮아졌습니다. 로마 시대에 6,000만 이었던 인구는 600년에 3,000만으로 감속하게 되었습니다. 땅 또한 비옥하지 못해 3 포작으로 겨우 곡식을 생산하였고 영아사망률이 상당했습니다. 봉건제로 얽매인 탓에 교역의 중심지로서나 왕의 거주지인 대도시 또한 없었습니다. 로마를 점령한 게르만 족은 중부 유럽에 프랑크 왕국을 설립합니다. 곧 후계에 대한 분쟁으로 동 프랑크와 서 프랑크로 분열되게 되는데 이는 현재 독일과 프랑스의 모태가 됩니다. 이 프랑크 왕국은 로마에 있는 교황과 정치적인 주도권을 놓고 갈등을 하게 됩니다. 동프랑크 왕국 샤를마뉴 대제는 서기 800년에 교황을 보호해준다는 명목으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관을 받아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적인 통치권은 각 지역의 영주들이 담당했습니다. 중세는 3포작이 조금씩 정착되면서 베네치아, 피렌체, 제노바, 파리의 인구가 10만에 도달했습니다. 당시 콘스탄티노플의 인구가 100만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미약하지만 조금씩 발전해 가던 유럽은 1346년 흑사병으로 인해서 다시 인구가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노예였던 농노들은 이렇게 비참했던 삶을 빨리 끝내고 내세에 천국에 가기만을 소망했고 따라서 종교적인 열망이 비현실적으로 커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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